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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빨강은 없다 김경서지음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이야기

by jinia.B 2023.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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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똑같은 빨강은 없다를 읽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이란 박물관의 액자 속의 것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은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일상에서 미술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하거나 생활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제대로 미술을 보고 읽는 법을 알려줍니다.

 

목차
똑같은 빨강은 없다 경험 / 표현 / 생각
1. 아름다움을 경험하다
2. 아름다움을 표현하다
3. 아름다움을 생각하다

똑같은 빨강은 없다 경험 / 표현/ 생각

1. 아름다움을 경험하다

그림이 먼저 시작되었고, 기록물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그 그림이 변형되어 문자가 되었는데, 한글만 예외입니다. 이 지구상의 대부분의 문자나 알파벳은 그림이 간소하게 매우 간소하게 변형된 형태입니다. 우리는 묘하게도 더 예쁜 것, 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합니다. 토기 하나를 만들어도 거기에 무늬를 넣습니다. 그 무늬는 점점 더 정교해집니다. 

어떤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다보니 같은 말도 사람마다 그 느낌의 척도가 다 조금씩 다릅니다. 

  • 예쁘다
  • 아름답다
  • 숭고미

이런 단어들은 혼용되어 쓰이기도하고 불명확하게 쓰이기도 하고 무슨 뜻인지 모르고 쓰이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느낌을 말이나 단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명을 위해 시도를 한다면, 예쁜 것과 아름다운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반짝거리면서 여러 빛을 띠는 길 앞자비 벌레를 보고 단순하게 조형에 대한 외적 판단을 우선한다면 예쁘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인식론적 미학의 관점에서, 길 앞자비 벌레가 벌레임에도 불구하고 그 차체로 자연이 빚어낸 속성이므로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색과 조형이 예쁜 것은 인정하나 벌레라서 싫거나 징그럽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답이 있을 수 없으며,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색과 조형이 예쁘지만 벌레라서 싫은 두 가지 느낌의 공존을 짚어보면서, 무섭지만 멋진, 그런 감정을 카스 파어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보면서 설명합니다. 이 공존하는 무섭지만 멋진 두 가지 느낌이 합쳐진 것을 일컬어 숭고미라고 합니다.

 

현미경으로 단풍든 낙엽을 보면 여러 종류의 빨간색과 노란색, 그리고 어떤 모양의 실금들이 있습니다. 비슷한데 똑같지는 않으면서 반복적으로 있어서 마치 추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자연에는 어떤 구조와 질서가 있습니다. 

 

변화, 통일, 균형.

 

구도의 3요소(변화, 통일, 균형)라는 것을 미술시간에 배웁니다. 시험에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늘 눈뜨면 보는 여러 가지 자연 속에서 이런 것들을 보고 미술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표현됩니다. 이제 우리는 편견 없이 자연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형상을 보는 순간, 상을 지어냅니다. 즉 선입견을 만들어내거나 불러일으킵니다. 몬드리안은 이런 상(형상)으로 인한 선입견 때문에 있는 그대로,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볼 수 없거나, 받아들일 수 없거나, 느낄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연 중에 오직 조형요소만을 뽑아내는 추상주의 양식이 시작되었습니다.

 

2. 아름다움을 표현하다.

우리의 뇌는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트릭아트 공간에 가면 너무나 재미있지요. 트릭아트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나요? 이런 것들을 눈속임이라고 여기면서도 우리의 뇌를 속여 트릭아트를 해내는 작가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명암을 주는 방식(명암법)으로 입체감을 표현했고, 동양은 채색의 농담을 다양하게 하는 요철법을 통하여 입체감을 나타냈습니다. 가까운 것은 크고 진하게 보이겠고, 먼 것은 흐리고 약하게 보이겠지요.

 

원근법과 투시법은 르네상스 시대에 한정된 그림 지면(캔버스)의 저 너머까지 이 장면이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동양에서는 가까운 것은 진하고 선명하고 먼 것은 흐리고 작아지는 방식(색채원근법 또는 공기원근법)으로 확장의 느낌을 표현합니다.

 

고대 이집트는 기록을 더 명확하게 한다는 관점으로 그림을 그렸고, 중세유럽의 종교적 조각들은 신이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볼 것이라는 관점으로 조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정면에서 바라볼 때 어딘가 어색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조각은 아래에서 위의 방향으로 관람색이 볼 것을 감안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해서, 완전한 정면에서 보면 어디인가 어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작품의 표현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과 같은 기술이 나오면서 점점 표현의 미술로 발달해 나갔습니다. 실제로 그림속의 사람의 비율이 맞지는 않지만(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실제와 다른 과장된 비례를 이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느낌을 더 많이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많이 나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우는 여인 역시 매우 일그러진 얼굴로 인해 확연이 슬픔과 속상함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현대로 오면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황량함 속에 녹아내리는 시계를 표현한 작품 기억의 지속처럼 무의식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작품도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편안하다기보다 불안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또는 재료가 아주 다양하게 사용되기도 하고, 기법도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황소머리와 같은 작품은 자전거의 안장과 자전거의 핸들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빛을 통해 눈으로 들어온 색에 대한 정보는 뇌로 향합니다. 너무나 재미있는 것은 어떻게 어느 각도로 어느 정도의 빛 속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색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배우 배두나의 짧은 인터뷰를 우연히 보았는데, 그녀는 연기할 때 될 수 있으면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배우가, 화장을 안 하다니. 연기할 때, 표현되는 감정에 따라 피부색이 변하는데, 화장을 하면 그것을 가리게 되고, 아무래도 표현이 감소되기 때문이라고 하는 그녀의 말은 엄청난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렇지요. 하다못해 같은 사람의 피부색도 똑같이 않으니까요!

 

색의 변화나 색상환의 대비와 같은 것은 과학과도 연결이 됩니다. 예를들어 보색을 대비시키면 더욱 강렬한 느낌과 인상을 만들어내고 선명하게 해 줍니다. 시선을 더욱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학공식과 같은 면이 있습니다. 명도 대비 역시 마찬가지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똑같은 회색으로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만들었지만 흰색 대비일 때, 검은색 대비일 때, 다르게 보입니다. 색깔도 크기도 다르게 보입니다. 이런 착시는 답을 알아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받은 정보를 뇌에 처리할 때, 일어나는 뇌 회로의 문제이니까요. 수년 전 인터넷을 떠돌았던 파란색 드레스에 금색 띠를 매치한 착시 드레스사진이 엄청나게 전 세계를 강타했었습니다. 시각과 뇌의 착각이 빚어낸 일이었지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아름다움의 표현은 사실상 미술관을 벗어난지 오래되었습니다. 모든 옷, 제품을 보세요. 2014년 석촌호수의 러버덕부터 우리 손에 매일같이 사용되는 스마트폰도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벽화마을도 탄생했습니다. 이런 그 어떤 표현하는 과정도 모두 미술이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인 잭슨 폴록의 작품은 아직까지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이 작품의 중요성은 만드는 과정과 행위 자체까지도 미술로 영역이 확장된 개념의 작품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완성된 작품만이 미술이 아니라 퍼포먼스까지도 미술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3. 아름다움을 생각하다.

유명한 예술작품들중에 신화나 이야기, 역사적 어느 시점 등을 표현한 그림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신화라면 그리스 로마신화, 성서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또는 그 사회의 문제(전쟁 등)를 담거나 그때 그 사회의 풍속과 일상이 담기거나 합니다. 그리고 그 속을 자세 살펴보면 숨겨진 이야기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작품이 만들어진 사회 역사적 배경도 함께 보면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의 인상을 담아내기도 하고, 설치미술을 통해 매일 익숙하게 보았던 일상의 풍경을 완전히 변경시키는 충격을 겪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의 구도가 모두 앞을 바라봅니다. 그림의 밖을 보는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즉, 그림 속의 인물들이 그림 밖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시점(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은 매우 파격적입니다.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년 1월 1일 0시에 발표함)이라는 작품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내용에 반박하여 만든 백남준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전 세계와의 소통을 예언했는데, 실제로 지금 우리는 전 세계와 소통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결론 

유니버셜 디자인은 아름다우면서 유용한 디자인을 말합니다. 디자이너들은 사용성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그저 이쁘게만 아름답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편리성을 함께 추구합니다. 그래야만 이 예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여가 되니까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자기기들은 아름다음과 편리함을 같이 추구하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사용할 때,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버튼을 하나 터치하거나 클릭하고, 자동차를 타고 그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 버튼을 누를 때, 이 모든 것들도 모두 다 미술과 사용성이 함께 추구된 것입니다. 자동문, 저상버스, 빨대 컵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미술은 우리 생활 속에 매우 밀접하게 붙어 있음을 알고 보게 된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며 미술이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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